창밖으로 내리는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정겹게 느껴지는 아침입니다.
오늘은 오랫만에 일상을 공유하는 포스팅을 하려고 합니다. 현충일인 어제 아이들과 나들이를 다녀왔습니다.
물론 현충일이 단순히 노는 휴일로 생각하고 놀러간 건 아닙니다. 국가를 지키기 위해 청춘과 목숨을 받친 순국선열에게
감사한 마음을 갖고 의미있는 장소가 근처에 어디 있을까 고민한 끝에 강화도로 결정했습니다.
의례 현충일이면 이름 있는 높으신 분들은 국립묘지를 찾아 헌화하고 기념식을 갖는게 매년 반복되는 날이지만 주변에
찾아보면 뜻을 기리며 방문할 수 있는 곳을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어제의 나들이 코스는 느즈막히 집을 나서 강화도 광성보와 전등사를 방문하고 돌아오는 계획이었습니다.
부천인 집에서 40km 남짓한 곳인데 비가 오고 차가 많이 막혀서 1시간20분 정도 걸린 것 같습니다.
1. 광성보
- 사적 제 227호. 강화해협을 지키는 중요한 요새로, 강화 12진보(鎭堡)의 하나이다. 고려가 몽골의 침략에 대항하기 위하
여 강화도로 천도 한 후에 돌과 흙을 섞어 해협을 따라 길게 쌓은 성입니다.
조선시대 광해군 때 헐어진 데를 다시 고쳐 쌓았으며, 1658년(효종 9년)에 강화유수 서원이 광성보를 설치하였습니다.
그 후 숙종 때(1679)에 이르러 완전한 석성(石城)으로 축조하였습니다.
1871년 신미양요 때 가장 치열했던 격전지로서 그 해 통상을 요구하며 강화해협을 거슬러 올라오는 미국 극동함대를
초지진·덕진진·덕포진 등의 포대에서 일제사격을 가하여 물리쳤습니다. 그러나 4월 23일 미국 해병대가 초지진에 상륙
하고, 24일에는 덕진진을 점령한 뒤, 여세를 몰아 광성보로 쳐들어옵니다. 이 전투에서 조선군은 열세한 무기로 분전하
다가 포로 되기를 거부, 몇 명의 중상자를 제외하고 전원이 순국하였습니다.
이 때 파괴된 문루와 돈대(墩臺)를 1976년에 복원하였으며, 당시 전사한 무명용사들의 무덤과 어재연(魚在淵) 장군의
전적비 등을 보수·정비하였다고 합니다.
2. 전등사
- 인천광역시 강화군 길상면(吉祥面) 정족산성(鼎足山城) 안에 있는 강화도에서 제일 큰 사찰.
381년(소수림왕 11)에 아도(阿道)가 창건하여 진종사(眞宗寺)라 하였습니다. 그 후 고려 제27, 28, 30대의 충숙왕(忠肅
王)·충혜왕(忠惠王)·충정왕(忠定王) 때에 수축하였고, 1625년(인조 3)과 1906년에도 중수하였으며, 또 일제강점기에도
두 차례 중수하였습니다.
전등사라는 이름은 충렬왕(忠烈王:재위 1274∼1308)의 비 정화궁주(貞和宮主)가 이 절에 옥등(玉燈)을 시주한 데서
비롯되는데 이때 정화궁주는 승려 인기(印奇)에게 《대장경》을 인간(印刊), 이 절에 봉안하도록 하였다고 합니다.
이 절에는 보물 제178호인 전등사 대웅전(大雄殿), 보물 제179호인 전등사 약사전(藥師殿), 보물 제393호인 전등사
범종(梵鐘)이 있습니다. 또 대웅전에는 1544년(중종 39) 정수사(淨水寺)에서 개판(改版)한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의
목판 104장이 보관되어 있다고 합니다.
전등사를 방문하여 순국선열에 대한 감사와 가족에 대한 건강과 평안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날씨가 좋았으면 2일, 7일 열린다는 강화풍물시장에 들려보려고 했는데 비가 점점 많이 내려서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왔
습니다. 이 글을 읽고 계신 여러분들도 날씨가 좋아지면 방문해 보시길 추천드립니다.